
저도 한때는 남들 눈치 보느라 정작 제 것은 하나도 못 챙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점심 메뉴 고를 때도 제가 먹고 싶은 걸 말하지 못하고,
승진 면접에서조차 "저보다 더 적합한 동료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게 미덕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냥 제 삶을 남에게 맡기고 있었던 겁니다.
이타주의라는 이름의 자기희생
제가 대학 시절 학생회 임원 선거에 나갔을 때 일입니다.
경쟁자가 한 명 있었는데, 투표 당일 저는 제 이름이 아닌 상대방 이름을 적어냈습니다.
결과는 한 표 차로 낙선이었죠. 주변에서는 "미쳤냐"고 했지만,
당시 저는 "내가 나를 찍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이상한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타주의(Altruism)'란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문제는 이 이타주의가 과도해지면 자기희생(Self-sacrifice)으로 변질된다는 점입니다.
자기희생이란 타인을 위해 자신의 권리나 기회를 포기하는 행동으로,
단기적으로는 관계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본인의 심리적 소진(Burnout)을 초래합니다.
저는 이런 패턴이 어디서 왔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들었던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라", "양보는 아름답다"는 교육이 제 안에서 왜곡되어 내재화된 겁니다.
배려와 양보 자체는 좋지만, 그게 "나는 항상 뒷전"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면 문제가 됩니다.
실제로 2023년 서울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과도한 이타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의 72%가 자존감 저하와 우울 증상을 경험한다고 합니다(출처: 서울대학교).
저 역시 그 72%에 포함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타인의 눈치를 보는 심리구조
제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쓴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미움받는 게 두려웠다'가 정답입니다.
누군가 저를 나쁘게 평가할까 봐, 뒤에서 욕할까 봐, 그 불안감이 모든 선택을 지배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승인 욕구(Social Approval Need)'라고 부릅니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본능적 욕구인데, 이게 과하면 자기결정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남에게 맡기는 겁니다.
저는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도 이 문제로 고생했습니다.
제 아이디어가 더 효율적이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혹시 팀장님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죠.
결국 프로젝트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행됐고, 저는 속으로만 답답해했습니다.
눈치를 보는 삶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실제 필요한 실리를 챙기지 못해 손해를 본다
- 정작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진심을 보이지 못한다
-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게 되어 자존감이 떨어진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시도는 결국 아무에게도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무관심이라는 필터로 관계 정리하기
저는 어느 순간부터 의도적으로 무관심을 실천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연락에 즉답하지 않고, 모임에 꼭 참석하지 않고,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방식으로요.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진심으로 저와 함께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제 무관심에 서운해하며 멀어졌습니다.
반면 저를 이용하려던 사람들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전자는 제 '존재' 자체를 원했고, 후자는 제가 제공하는 '가치'만을 원했던 겁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진짜 관계는 내가 무언가를 베풀지 않아도 유지되지만,
거래적 관계는 내가 주는 걸 멈추는 순간 끝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좋은 사람'들은 후자를 전자로 착각하며 소진됩니다.
물론 무관심을 도구로 쓰는 건 극단적인 방법입니다.
제 경험상 더 건강한 접근은 '선택적 관심'이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사람 5명을 정하고, 그들에게만 에너지를 쏟는 겁니다.
나머지에게는 친절하되 깊이 관여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깨달음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세상이 쉬워진다는 말,
저는 조금 다르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세상이 만족스러워진다"가 더 정확합니다.
쉬워지는 게 아니라,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승진하고 싶어서, 계약 따내려고, 누군가를 내 편으로 만들려고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는 건 전략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제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더 이상 하지 않는 게 본인 건강을 위해 좋습니다.
저는 지금 제 방식대로 살고 있습니다. 업무적으로 필요한 친절은 하되,
그 이상의 희생은 하지 않습니다.
제 시간과 에너지는 제가 선택한 사람과 일에만 씁니다.
누군가는 저를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삶의 만족도는 분명히 올라갔습니다.
세상에 사는 방식의 정답은 없습니다.
어이없게 칭송받는 일도, 부당하게 비난받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본인이 불행해진다면, 그건 잘못된 방향입니다.
제 경험을 정리하자면,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보다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결국 누구에게도 진짜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에게 맞는 결정만이 있을 뿐입니다.